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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게임이 학교다 행사가 있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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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6 Mar 2010 02:16:59 +0000</pubDate>
		<dc:creator>Shinpizza</dc:creator>
				<category><![CDATA[Game]]></category>
		<category><![CDATA[Headlin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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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게임이 학교다 Games &#38; The Future of Learning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 Games &#38; Learning의 대부이신 James Paul Gee 교수님과 함께 성균관대에서 진행될 무료행사입니다.
16일 화요일 부터 3일간 워크숍이 있고 금요일에는 세미나가 있습니다.
http://game.ftm.kr/
사이트에 가시면 행사 정보도 보고 등록을 하실수 있습니다.
게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game.bmp"></a></p>
<p><strong><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Web_fol01.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91" title="Web_fol01" src="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Web_fol01.jpg" alt="Web_fol01" width="311" height="293" /></a></strong></p>
<p><strong>게임이 학교다 Games &amp; The Future of Learning</strong>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br />
미국 Games &amp; Learning의 대부이신 James Paul Gee 교수님과 함께 성균관대에서 진행될 무료행사입니다.<br />
16일 화요일 부터 3일간 워크숍이 있고 금요일에는 세미나가 있습니다.</p>
<p><a href="http://game.ftm.kr/"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66cc;">http://game.ftm.kr/</span></a><br />
사이트에 가시면 행사 정보도 보고 등록을 하실수 있습니다.</p>
<p>게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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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피터잭슨이 말하는 업과 원의 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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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5 Mar 2010 16:33:52 +0000</pubDate>
		<dc:creator>Shinpizza</dc:creator>
				<category><![CDATA[Movie]]></category>
		<category><![CDATA[러블리본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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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웅장한 스케일, 기가 막힌 전쟁씬.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의 새 영화는 이런 것과 거리가 먼 다소 따분한 영화다. 레이첼 웨이즈를 제외한다면 배우들도 듣보잡 배우들이 출연한다. 하지만 그들의 수준 높은 연기는 배우의 힘인지 감독의 연출력인지 헷갈리게 만들지만 흠잡을 곳이 없다. 그만큼 배우와 이야기상에는 헛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피터 잭슨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특수효과의 제왕일 것이다. 영화 초반에 수지가 자신의 동생을 구할 때 그의 할머니가 넌 누군가의 목숨을 구했으니 좋은 덕을 쌓아 오래 살게 될 것이야라는 부디즘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 영화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원에 대한 이야기가 서양식으로 탈바꿈되고 피터잭슨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12.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79" title="112" src="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12.jpg" alt="112" width="405" height="197" /></a></p>
<p>웅장한 스케일, 기가 막힌 전쟁씬.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의 새 영화는 이런 것과 거리가 먼 다소 따분한 영화다. 레이첼 웨이즈를 제외한다면 배우들도 듣보잡 배우들이 출연한다. 하지만 그들의 수준 높은 연기는 배우의 힘인지 감독의 연출력인지 헷갈리게 만들지만 흠잡을 곳이 없다. 그만큼 배우와 이야기상에는 헛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p>
<p>아마 피터 잭슨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특수효과의 제왕일 것이다. 영화 초반에 수지가 자신의 동생을 구할 때 그의 할머니가 넌 누군가의 목숨을 구했으니 좋은 덕을 쌓아 오래 살게 될 것이야라는 부디즘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 영화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원에 대한 이야기가 서양식으로 탈바꿈되고 피터잭슨의 상상력과 합쳐져 환타지적으로 들어난다. 지상과 천상의 중간 세계. 흔히 연옥 혹은 중천이라 부르는 이 세계를 굉장한 환타지로 꾸며 놓은 것이다.<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2-12_031752.jpg"></a>왜 러블리 본즈일까 ?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 끝에 가면 다 이야기해준다.<br />
대신 이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천상으로 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한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으로 요약하면 될 것 같다.</p>
<p>세상에 완벽한 범죄는 없다. 죄를 지은 것은 결국 업으로 쌓여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지상의 죄는 결국 하늘의 뜻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게된다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서양의 시각으로 스릴감 있게 본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긴장하고 싶은가 ? 반전을 원하는가 ?</p>
<p>이 영화를 봐라 !</p>
<p><img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80" title="2010-02-12_031752" src="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2-12_031752-300x124.jpg" alt="2010-02-12_031752" width="467" height="15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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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래를 향한 최악의 시나리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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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5 Mar 2010 16:27:46 +0000</pubDate>
		<dc:creator>Shinpizz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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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Movi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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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이글아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투자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미래의 이야기를 다른 감독의 눈을 빌려 영화 이글아이를 통해 확장했다. 미래 이야기를 다룬 영화중에서 이미 고전이 돼버린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수많은 미래의 이야기는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 즉 우울한 미래를 다룬다는 것은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확정지기 보다 현재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으니 고치지 않으면 이런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즉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은 바로 현실의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SF 영화에서 미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크게 범주화한다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기계가 인간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3.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size-medium wp-image-75" title="13" src="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3-300x145.jpg" alt="13" width="300" height="145" /></a><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2.jpg"></a></p>
<p>이글아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투자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미래의 이야기를 다른 감독의 눈을 빌려 영화 이글아이를 통해 확장했다. 미래 이야기를 다룬 영화중에서 이미 고전이 돼버린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수많은 미래의 이야기는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 즉 우울한 미래를 다룬다는 것은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확정지기 보다 현재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으니 고치지 않으면 이런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즉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은 바로 현실의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SF 영화에서 미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크게 범주화한다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통제와 감시 사회다. 이글아이는 이 두 이야기를 같이 내포하고 있었고 수업 시간에 배운 통제 사회, 감시 사회와도 크게 연관되고 있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p>
<p class="바탕글"> 이글아이에서 권력이 개인의 생활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방법은 위성카메라, 도청장치, CCTV, RFID 와 같은 최첨단 디지털기술에 기반을 둔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런 감시자가 조지오웰의 소설 1984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처럼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인공지능 컴퓨터 아리아였다. 미국 내의 모든 CCTV , 전화 ,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반국가적 행위에 가담하는 자를 찾아내는 놀라운 연산력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런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전에 녹화된 화면으로 감시자를 속이지만 0.1초도 쉬지 않는 인공지능 컴퓨터에게는 이 감시망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공장에서 시작된 자동화가 사무실로 전이되고 이제 모든 서비스 공간이 자동화되는 현 시점에서 사람이 아닌 컴퓨터에 의해 감시당한다는 것은 우리가 편해지기 위해 설치하고 있는 자동화 기술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할지 이제 기준을 정해야 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p>
<p class="바탕글"> 감시라는 권력 기술은 전자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의 정보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미셸 푸코는 전자기술 출현이전에 감시가 권력에서 나온 기술임을 보여준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통해 감시가 근대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기본 조건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푸코는 18세기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이상적인 감옥 형태로 구상했다는 판옵티콘이라는 감옥 설계도에서 근대적 감시체제의 기본적인 모델을 발견했다. 판옵티콘은 ‘모두 다 본다’ 는 뜻을 담고 있다.” 판옵티콘은 원형으로 된 건물과 그 중앙에 세워진 원형 감시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감시탑에서는 바깥의 원형 건물들을 볼 수 있는 창문이 뚫려 있다. 죄수들의 방은 원형 건물 안에 독방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감시탑에서는 언제나 이 방들을 볼 수 있다.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겠지 하고 시선을 부정하고 규칙을 어기면 어김없이 발각되고 신체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은 중앙의 탑에서 나오는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되어 감옥의 규칙에 순응하는 순종적인 주체로 만들어지는 것이다.</p>
<p class="바탕글"> 이글아이에서 역시 컴퓨터가 내린 명령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판옵티콘과 유사하다. 컴퓨터가 내리는 암살 명령이나 반인륜적 행동에 대한 명령을 어기고 싶지만 그들이 돌려받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감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최신 정보기술을 눈으로 가진 슈퍼컴퓨터 아리아는 그들을 항상 지켜보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마다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이다.</p>
<p class="바탕글"> 이런 과정을 훈육이라고 푸코는 정의했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들을 특정한 행위양식과 사고방식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훈육인 것이다. 이런 훈육의 과정은 감옥에서 벗어나 학교, 병원, 공장, 군대 등에서 “공간을 용도에 맞게 분할하고 각 공간에 걸 맞는 행위양식과 사고방식을 감시와 처벌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개인의 신체에 각인시키고 근대적 주체로 만들어나갔다.”</p>
<p class="바탕글"> 푸코의 감옥은 또 한 번 진화했다. 정보화의 물결과 같이 동반된 기술적 진화로 감시의 장소는 더 이상 특정 공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감시는 이제 탈공 간화되어 디지털 네트워크, 위성 시스템, RFID, CCTV 등과 같은 다양한 전자장비들로 불특정한 다수를 감시하고 있다.</p>
<p class="바탕글"> 이글아이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불특정 다수 중 개인이라는 한 명을 부각시켜 감시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애셜론(Echelon) 사건과 9.11 테러 이후 통과된 애국법(Patriot Act)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8216;애셜론은 자동화된 도감청 시스템으로 전 세계의 전자통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핵무기’, ‘테러’ 등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여 시간당 2백만 건, 한 달에 1억 건의 이메일, 전화 등을 도청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은행계좌, 신용카드 사용내역까지 수집할 수 있는 이 애셜론은 테러나 국제범죄와 같은 안보 영역뿐만 아니라 기업의 활동과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문제시 되었다.&#8217;</p>
<p class="바탕글"> 2001년 9월 11 일. 미국은 9.11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테러라는 이름 안에 자국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국가에 헌납한다는 애국법(Patriot Act) 이 제정된 이후 미국인들의 사생활은 침범 당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야후로 보내는 이메일은 특정 단어를 걸러내는 필터링을 통해 감시당하며 이글아이의 아리아와 같은 감시 컴퓨터는 향후 2-3년 안에 실제로 상용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하루 140 회 이상 CCTV 에 노출된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영화에서 우려하는 정도가 완전히 현실을 배재한 판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내 평범한 일상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영화 속 주인공 제리와 같아질 수 있다는 우리 일상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영화한 것이다.</p>
<p class="바탕글"> RFID 가 옷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어디를 지나다니고 있는지 추적이 가능해졌다. CCTV 는 이제 골목 구석구석까지 설치되어 내가 아무리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한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나의 행적은 기록된다. 내가 쓰는 이메일, 문서는 특정 단어가 필터링 되고 내 개인신상정보는 데이터베이스로 정부, 기업 혹은 개인의 컴퓨터에 기록되어 그들이 필요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어쩌면 조지오웰이 말했던 빅브라더 지배보다 더욱 더 통제된 사회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p>
<p class="바탕글"> 하지만 이런 통제 사회에 공포심을 가지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처럼 권력에 의한 대중의 감시가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권력에 대한 대중의 감시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에 대한 위협 때문에 일어난 대규모 촛불시위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대중들이 더 빨리 정보를 획득하고 어떤 것이 문제인지 무엇이 올바르지 않는지를 검색하여 찾아낸 결과이다. 찾아낸 정보를 정보기술을 통해 수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한 것이다. 나치가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대중을 통제했지만 오늘날 권력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어설픈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은 이제 정보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이 나를 감시하는 만큼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은 나 역시 부패된 권력, 잘못된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게 해주고 대항할 수 있게 바꿔준 것이다.</p>
<p class="바탕글"> 영화 속 이야기는 분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감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임이 분명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미래를 그리는 공상과학영화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은 미래가 정말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잘못된 점을 알고 있으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수 없이 설치된 CCTV, 정보 필터링에 대해 뉴스 자료를 듣고 있다. 누구나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중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p>
<p class="바탕글"> 이 영화에서는 컴퓨터가 분석을 통해 폭격 대상이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은 분석을 무시한 채 폭격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정한 우리의 적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감시 시스템을 수월하게 하는 정보 기술인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하는 권력인지. 우리는 지속적으로 발달되는 정보화 기술에 대해 불신을 갖고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정보화 기술,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그 발달 된 기술을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려는 권력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참고 문헌 및 자료</p>
<p class="바탕글">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감독, 1982</p>
<p class="각주">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 토니 스콧 감독, 1998</p>
<p class="각주">감시와 처벌, 미셸푸코, 다락원, 2009</p>
<p class="각주">현대문화론 강의: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이진경 편저, 20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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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클랏사신, 시나리오에 대한 반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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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4 Mar 2010 12:09:25 +0000</pubDate>
		<dc:creator>Shinpizz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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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Headline]]></category>
		<category><![CDATA[시나리오]]></category>
		<category><![CDATA[클랏사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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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안국역입니다. 가식적이고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지하철에 울려 퍼진다. 이 음성은 약해보이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순식간에 땅속을 질주한 지하철을 순식간에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은 사람을 뱉어내고 또 다른 사람을 담아 또 다시 질주를 시작한다. 질주하는 지하철 뒤로 흘러나오는 거친 바람을 등지고 땅 속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구름 한 점 없는 공허한 하늘이 나를 뒤덮는다. 가을이었다.
안국역을 나와 거리를 걷다보면 이질적이다. 전통을 지키고 있는 중이라는 인사동을 마주한 골목 사이에는 한옥 마을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골목은 깊어질수록 외국이 된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가게, 이태리 전통 파스타 집, 최고의 향과 맛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1-14_071539.jpg" target="_blank"></a></p>
<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1-14_071539.jpg" target="_blank"></a><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1-14_0715391.jpg"></a><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1-14_071539.jpg" target="_blank"></a><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2010-01-14_0715391.jpg"></a></p>
<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jpg"></a></p>
<p><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1.jpg"></a></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1-511x10241.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47" title="11-511x10241" src="http://www.commtor.com/wp-content/uploads//2010/03/11-511x10241.jpg" alt="11-511x10241" width="358" height="717" /></a></p>
<p>이번 역은 안국역입니다. 가식적이고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지하철에 울려 퍼진다. 이 음성은 약해보이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순식간에 땅속을 질주한 지하철을 순식간에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은 사람을 뱉어내고 또 다른 사람을 담아 또 다시 질주를 시작한다. 질주하는 지하철 뒤로 흘러나오는 거친 바람을 등지고 땅 속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구름 한 점 없는 공허한 하늘이 나를 뒤덮는다. 가을이었다.</p>
<p class="바탕글">안국역을 나와 거리를 걷다보면 이질적이다. 전통을 지키고 있는 중이라는 인사동을 마주한 골목 사이에는 한옥 마을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골목은 깊어질수록 외국이 된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가게, 이태리 전통 파스타 집, 최고의 향과 맛을 자랑한다는 커피집이 골목 사이사이 즐비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파스타 집이 한옥의 옷을 입고 있는 곳도 있으며 떡볶이 집과 파스타 집이 마주 본 형태의 골목도 존재한다. 이국적인 골목은 어느새 한국과 교접한다.</p>
<p class="바탕글">그 골목길을 지나 다시 대로를 따라가면 나들이를 나온 수많은 사람의 행렬과 마주친다. 노랗게 물든 은행 비를 맞으며 걷는 느낌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낭만적이다. 그 길 끝에 몽인 미술관이 있었다. 주민 센터 옆에 바로 자리한 몽인 미술관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질적이다. 작고 아담한 건물 사이에 현대적이고 세련미 있게 들어선 아트센터는 스펙터클하다. 특히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입구는 내가 마치 엄청난 부잣집에 택배를 배달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내 정신으로는 쉽게 발길을 하기 힘든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p>
<p class="바탕글">자신 있게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관람객 하나 없이 텅 빈 공간. 온통 하얀 벽 사이로 액자 11개만 걸려 있다. 옆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아가씨가 책상에 앉아있다. 나는 어디서부터 발걸음을 해야 할지 망설인다. 잠시 공간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핀다. 2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발걸음을 옮기자 그때서야 아가씨는 나에게 눈길을 준다. 2층 역시 당황스럽다. 어두운 방 사이로 달랑 두세 명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좌석만이 있었다. 등받이 없는 좌석만이…….</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라스의 &lt;클랏사신&gt;은 내가 그 작품을 보러오며 느낀 감정만큼이나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서로 연관된 수십 개의 장면들이 서로 조합되어 67시간 동안 돌아간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과정의 문장 역시 수십 개로 나뉘어져 조합되면 다양한 생각, 공간을 통해 클랏사신을 보러 온 과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헷갈리게 될 수도 있다. 클랏사신이 가진 의미 역시 비슷한 것 같다. 67시간 중 1시간을 보았지만 난 나머지 66시간이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본 1시간이 시작부분인지 끝부분인지 도대체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우리는 영화 혹은 영상물이라 하면 시작과 끝을 논하게 된다. 시나리오라는 잘 짜여진 구성을 생각하고 발단 &#8211; 전개 -클라이맥스 &#8211; 결말이라는 구조에 따라 느낀 감정을 통해 영상물을 평가한다.</p>
<p class="바탕글">영상물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이 영상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게 된다. 어떤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어떻게 되는지를 따라가며 그 과정과 결과에 따라 이야기의 장단점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영화에 대한 극대화된 매력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클랏사신은 ‘가장 좋은 시나리오란 시나리오가 눈에 안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라는 시나리오 대가들의 정석을 따랐는지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가진 기존의 관념을 파괴한다.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는 편견을 파괴하고 내가 어디에서 창조되었고 죽음을 통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모르는 것처럼 시작과 끝이라는 모호한 지점을 파괴한다. 이와 함께 등장인물에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를 비판하던 관객들은 비판거리조차 찾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p>
<p class="바탕글">두 세 사람 밖에 앉을 수 없는 등받침 없는 불편한 의자 역시 일상적인 영화관과는 다르다. 67시간동안 이 영화를 다 지켜볼 수는 없게 만든 것이다. 작은 공간에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모여 앉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일반 영화관과도 확연히 다르다. 몇 개의 이야기가 모순적으로 구성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lt;라쇼몽&gt; 을 서술방식의 기초로 삼고 있지만 &lt;라쇼몽&gt; 과도 다른 점은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p>
<p class="바탕글">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관객은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어떤 부분을 보고 있는 거야라는 불편함과 앉아있는 공간의 불편함은 도대체 내가 무엇을 봐야하는지 왜 이것을 봐야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카오스의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영상을 보며 느낀 이런 불안감은 영상의 해석에도 영향을 준다. 같은 장면을 보고 나와도 이런 것 아니었어 ? 이렇게 되는 거 아니었어 ?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 자체다.</p>
<p class="바탕글">‘&lt;클랏사신&gt;은 1864년 캐나다 산맥의 숲속을 배경으로 원주민과 금을 찾고자 하는 침략자간의 충돌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작품의 배경 설명에 따르면 원주민의 족장은 금을 찾으로 온 백인들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백인들은 이 족장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추적을 피하며 저항을 시도했으나 화해의 증표로 가장한 담배에 속아 살인죄로 체포된다.</p>
<p class="바탕글">재판을 받게 된 원주민들은 일부가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풀려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원주민을 호송하던 보안위원이 숲에서 살해된다. 살인 용의자를 둘러싼 재판이 벌어지고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이 엇갈리며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재조합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p>
<p class="바탕글">얼핏 보면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특정 심리를 가진 등장인물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 즉 드라마틱 플롯(Dramatic plot)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영상의 제목 &lt;클랏사신&gt; 이라는 의미가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라는 것을 대변하듯 이 영상의 등장인물에서는 뚜렷함을 찾아 볼 수 없다. 누가 이 영상의 중심인지 모르며 이 안에서 중심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용의자를 심문하는 재판관의 존재 역시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인과관계에 따른 스토리 구성보다 시간배열에 따른 스토리 구성을 선택했다. 같은 화면들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뱉어내는 이야기들은 지속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이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없다. 지속적인 시간의 배열만이 이루어질 뿐이다. 이 말은 즉 이 영상에서 중요한 것은 Shot 아닌 Cut 이라는 점이다. Shot 은 사물을 표현해낸다. 시공간을 담아내기도 하고 감정과 욕망을 담아내기도 한다. 물리적 크기, 앵글, 높이에 따라 인물들은 달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지만 적절한 감정을 골라 낼 수는 없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모든 행동들을 일정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영상의 시간 안에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러스는 67시간이라는 영상의 시간을 통해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시간의 벽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을 롱테이크로 잡아 특정 인물을 표현하는 Shot 의 구성을 선택하는 대신 끊임없이 Shot 을 나누어 시간과 사건이 변화되는 Cut 의 구성을 선택한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도구 즉 카메라 레코딩 버튼의 시작과 끝에 의존한 선형성 보다는 시간 공간을 잘라내고 재배열하는 비선형성을 선택한 것이다. “자크오몽은 이런 Shot의 변화에 대해 ‘시각적인 작은 트라우마’ 라고 표현했다. 영화사 초기의 관객들에게 갑작스러운 쇼트의 변화는 시각적인 잔인함, 진정한 폭력을 느끼게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스탠 더글러스는 바로 Shot의 변화에 따른 충격의 중요성을 간파한 것이다.</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러스가 선택한 주된 표현법은 플래시백(Flash back)이다. 그는 현실에 있던 상황을 어느새 과거로 돌려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사건에 대해 지속적인 변화를 가한다. 이 결과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으며 내가 가진 기억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과거로 돌아가는 불연속적인 시간의 변화를 사용해 영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을 방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보통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용되는 친절한 도구로 사용된다. 현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부족함을 플래시백을 통해 채워 넣어 영화의 한정된 시간을 극복하려 하지만 스탠 더글러스는 이 친절한 장치를 불친절한 장치로 사용해 버린 것이다.</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러스가 이 복잡하고 솔직히 말해 쓸데없어 보이는 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 그의 의도를 생각해보게 된다. 단순히 같은 영상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는 무지한 대중에게 같은 영상을 여럿이 보아도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 이를 통해 헐리웃 중심의 획일적인 영상 세계를 비판하려 한 것일까 ?</p>
<p class="바탕글">그의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얻고 싶은 것은 결국 내러티브의 본질을 깨닫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흔히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제작할 때 시나리오를 논하거나 만들려고 한다. 스탠 더글러스 역시 배경을 설명하고 인물을 소개하고 줄거리를 설정하는 등 시놉시스를 제공한다.</p>
<p class="바탕글">여기까지 기존의 시나리오 작업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다르다. 그의 시나리오에는 주된 스토리가 없다. 보통 시나리오는 주된 스토리를 중심으로 부가적인 스토리들이 결합되고 가지치기 되어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는 서사구조가 있다. 스탠 더글러스는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오직 에피소드가 뭉쳐 스토리가 되고 플롯이 되어 내러티브가 되는 전형적인 내러티브 생성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 결말이 무엇이고 시작의 방식이 어떻게 되어 어느 지점이 핵심이 되는 지점인지 고민하고 텍스트로 옮기는 기존 시나리오와는 다르다.</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러스는 대신 디지털의 비선형성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쓴다. 즉 텍스트적인 편집을 통한 샷의 구성, 사건의 구성이 아니다. 시각적 편집을 통해 장면을 구성하고 사건을 구성해내는 것이다. 대만의 감독 휴사오시엔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 즉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골라내는 것이라고 했었다. 스탠 더글러스의 예측할 수 없는 시간적 배열의 재구성은 내러티브에 대한 편견을 파괴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p>
<p class="바탕글">“시나리오는 영화에 자금력을 행사한 텔레비전, 국가, 지역사회 등 다양한 권력 기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명확한 이야기, 전형적인 등장인물, 도덕적인 목표를 향해 점점 굳어져갔다. 투자한 자금만큼의 이익을 얻어야 하는 산업으로 발달하며 즉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이야기 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p>
<p class="바탕글">스탠 더글러스는 &lt;클랏사신&gt; 을 통해 바로 변형된 내러티브가 아닌 원형의 내러티브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과 끝도 없다. 다 보지 않아도 된다. 고민하라. 이야기가 무엇인지. 오늘 날 전형적인 시나리오로 빠른 소비를 위한 이야기를 비판하고 1960년대에 불었던 작가주의와 같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의 재조합을 통해 써내려 간 것이다. 단지 차이는 1960년대의 작가주의는 원래의 문학적 의미를 되살린 아날로그적 회귀라면 스탠 더글러스는 디지털 편집을 통해 이야기의 본질을 논하는 디지털 작가주의의 탄생을 선언했다는 점인 것 같다.</p>
<p class="바탕글">이 공간을 벗어나 수많은 생각이 끝날 쯤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역은 안국역입니다.”</p>
<p class="바탕글">┃참고 문헌 및 자료</p>
<p class="바탕글">1)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몽인아트센터 디렉터,김윤경(2009)</p>
<p class="각주">2) 쇼트;영화의 시작, 엠마뉴엘 시에티 지음, 심은진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2006)</p>
<p class="각주">3) 시나리오, 안느 위에 지음, 김도훈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2006)</p>
<p class="각주">4) 영상편집에 대한 조망, 월터머치 저, 윤영묵 역, yenee(2002)</p>
<p class="각주">5) 영화 분석 입문, 프랑시스 바느와, 안 골리오 레테 저, 주미사 옮김, 한나래(1997)</p>
<p class="각주">6) 진동_오실레이션;디지털 아트, 인터랙션 디자인 이야기, 제이D 볼터외 1명, 이재준 옮김, 미술문화(20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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