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최악의 시나리오
이글아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투자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미래의 이야기를 다른 감독의 눈을 빌려 영화 이글아이를 통해 확장했다. 미래 이야기를 다룬 영화중에서 이미 고전이 돼버린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수많은 미래의 이야기는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 즉 우울한 미래를 다룬다는 것은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확정지기 보다 현재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으니 고치지 않으면 이런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즉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은 바로 현실의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SF 영화에서 미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크게 범주화한다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통제와 감시 사회다. 이글아이는 이 두 이야기를 같이 내포하고 있었고 수업 시간에 배운 통제 사회, 감시 사회와도 크게 연관되고 있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글아이에서 권력이 개인의 생활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방법은 위성카메라, 도청장치, CCTV, RFID 와 같은 최첨단 디지털기술에 기반을 둔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런 감시자가 조지오웰의 소설 1984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처럼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인공지능 컴퓨터 아리아였다. 미국 내의 모든 CCTV , 전화 ,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반국가적 행위에 가담하는 자를 찾아내는 놀라운 연산력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런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전에 녹화된 화면으로 감시자를 속이지만 0.1초도 쉬지 않는 인공지능 컴퓨터에게는 이 감시망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공장에서 시작된 자동화가 사무실로 전이되고 이제 모든 서비스 공간이 자동화되는 현 시점에서 사람이 아닌 컴퓨터에 의해 감시당한다는 것은 우리가 편해지기 위해 설치하고 있는 자동화 기술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할지 이제 기준을 정해야 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시라는 권력 기술은 전자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의 정보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미셸 푸코는 전자기술 출현이전에 감시가 권력에서 나온 기술임을 보여준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통해 감시가 근대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기본 조건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푸코는 18세기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이상적인 감옥 형태로 구상했다는 판옵티콘이라는 감옥 설계도에서 근대적 감시체제의 기본적인 모델을 발견했다. 판옵티콘은 ‘모두 다 본다’ 는 뜻을 담고 있다.” 판옵티콘은 원형으로 된 건물과 그 중앙에 세워진 원형 감시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감시탑에서는 바깥의 원형 건물들을 볼 수 있는 창문이 뚫려 있다. 죄수들의 방은 원형 건물 안에 독방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감시탑에서는 언제나 이 방들을 볼 수 있다.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겠지 하고 시선을 부정하고 규칙을 어기면 어김없이 발각되고 신체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은 중앙의 탑에서 나오는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되어 감옥의 규칙에 순응하는 순종적인 주체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글아이에서 역시 컴퓨터가 내린 명령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판옵티콘과 유사하다. 컴퓨터가 내리는 암살 명령이나 반인륜적 행동에 대한 명령을 어기고 싶지만 그들이 돌려받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감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최신 정보기술을 눈으로 가진 슈퍼컴퓨터 아리아는 그들을 항상 지켜보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마다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이다.
이런 과정을 훈육이라고 푸코는 정의했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들을 특정한 행위양식과 사고방식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훈육인 것이다. 이런 훈육의 과정은 감옥에서 벗어나 학교, 병원, 공장, 군대 등에서 “공간을 용도에 맞게 분할하고 각 공간에 걸 맞는 행위양식과 사고방식을 감시와 처벌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개인의 신체에 각인시키고 근대적 주체로 만들어나갔다.”
푸코의 감옥은 또 한 번 진화했다. 정보화의 물결과 같이 동반된 기술적 진화로 감시의 장소는 더 이상 특정 공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감시는 이제 탈공 간화되어 디지털 네트워크, 위성 시스템, RFID, CCTV 등과 같은 다양한 전자장비들로 불특정한 다수를 감시하고 있다.
이글아이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불특정 다수 중 개인이라는 한 명을 부각시켜 감시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애셜론(Echelon) 사건과 9.11 테러 이후 통과된 애국법(Patriot Act)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애셜론은 자동화된 도감청 시스템으로 전 세계의 전자통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핵무기’, ‘테러’ 등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여 시간당 2백만 건, 한 달에 1억 건의 이메일, 전화 등을 도청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은행계좌, 신용카드 사용내역까지 수집할 수 있는 이 애셜론은 테러나 국제범죄와 같은 안보 영역뿐만 아니라 기업의 활동과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문제시 되었다.’
2001년 9월 11 일. 미국은 9.11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테러라는 이름 안에 자국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국가에 헌납한다는 애국법(Patriot Act) 이 제정된 이후 미국인들의 사생활은 침범 당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야후로 보내는 이메일은 특정 단어를 걸러내는 필터링을 통해 감시당하며 이글아이의 아리아와 같은 감시 컴퓨터는 향후 2-3년 안에 실제로 상용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하루 140 회 이상 CCTV 에 노출된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영화에서 우려하는 정도가 완전히 현실을 배재한 판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내 평범한 일상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영화 속 주인공 제리와 같아질 수 있다는 우리 일상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영화한 것이다.
RFID 가 옷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어디를 지나다니고 있는지 추적이 가능해졌다. CCTV 는 이제 골목 구석구석까지 설치되어 내가 아무리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한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나의 행적은 기록된다. 내가 쓰는 이메일, 문서는 특정 단어가 필터링 되고 내 개인신상정보는 데이터베이스로 정부, 기업 혹은 개인의 컴퓨터에 기록되어 그들이 필요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어쩌면 조지오웰이 말했던 빅브라더 지배보다 더욱 더 통제된 사회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런 통제 사회에 공포심을 가지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처럼 권력에 의한 대중의 감시가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권력에 대한 대중의 감시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에 대한 위협 때문에 일어난 대규모 촛불시위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대중들이 더 빨리 정보를 획득하고 어떤 것이 문제인지 무엇이 올바르지 않는지를 검색하여 찾아낸 결과이다. 찾아낸 정보를 정보기술을 통해 수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한 것이다. 나치가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대중을 통제했지만 오늘날 권력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어설픈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은 이제 정보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이 나를 감시하는 만큼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은 나 역시 부패된 권력, 잘못된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게 해주고 대항할 수 있게 바꿔준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분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감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임이 분명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미래를 그리는 공상과학영화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은 미래가 정말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잘못된 점을 알고 있으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수 없이 설치된 CCTV, 정보 필터링에 대해 뉴스 자료를 듣고 있다. 누구나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중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컴퓨터가 분석을 통해 폭격 대상이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은 분석을 무시한 채 폭격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정한 우리의 적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감시 시스템을 수월하게 하는 정보 기술인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하는 권력인지. 우리는 지속적으로 발달되는 정보화 기술에 대해 불신을 갖고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정보화 기술,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그 발달 된 기술을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려는 권력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감독, 1982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 토니 스콧 감독, 1998
감시와 처벌, 미셸푸코, 다락원, 2009
현대문화론 강의: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이진경 편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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